인생 썰롱 (15) 썸네일형 리스트형 추위 저녁때가 조금은 지난 시간 한 남자가 차를 몰고 맥도날드로 들어온다. 입구에서 남자의 차는 잠시 망설인다. 먹고갈지 DRIVE THROUGH로 포장해갈지를 망설이는 것일 터. 이내 결정을 한 듯한 남자는 매장입구에 가까운쪽에다 차를 주차한다. 차에서 내리는 남자의 옷차림이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대비하지 못 한듯 얇은 회사잠바를 입고 있다. 회사잠바로는 막아지지 않는 찬 바람에 남자는 잔뜩 웅크린채 양손으로 양팔을 감싸며 매장으로 뛰어 온다. 매장으로 들어서자 마자 날카로웠던 찬 공기는 온데간데 없이 쾌적하다. 남자는 익숙한듯 자동주문기기 앞으로 간다. 메뉴를 이리저리 살피던 남자는 결정을 한듯 주문을 마치고 계산을 한다. 계산을 끝낸 남자는 앉을 자리를 찾는 듯 매장안을 두리번 거린다. 혼자 앉기 적합해..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드라마,책 가릴 것 없이 슬픈장면을 보면 종종 눈물을 흘린다. 대학교때 만났던 여자친구는 슬픈영화를 함께 볼 때면 항상 내가 우는지 확인을 하곤 했었다. 그럴 때 마다, "장난치나?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번 만 우는기다. 지금 내 눈은 사하라 사막보다 더 건조한 상태다" 같은 허세 가득한 말을 하곤 했었다. 그렇게 티격태격 연애를 하던 중 시간은 어느새 흘러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자르고 국가의 부름에 응해야 하는 시기가 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하루라도 안보면 죽는거 처럼 붙어다녔던 우리였지만, 그런 여자친구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 보다도 나에겐 더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입대일 며칠 뒤 개봉하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지 못 하고 입대 해야하는 것 이었다. 당시 최고의 미남배.. 중고거래하다 천사만난 SSUL. 살면서 막연히 잘 하고 싶은데, 막상 해보면 맘처럼 잘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가령 외국어 배우기, 몸매 가꾸기 같은것들 말이다. 나에게는 기타연주가 그랬다. 친구의 멋드러진 기타연주를 보고는 '나도 한곡쯤은 자신있게 멋드러지게 연주하고싶다'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덥썩 기타를 구매 했었다. 하지만 기타를 배워보면 손가락도 아프고, 코드도 잘 안 잡히고, 실력은 안 느는거 같고 이런연유로 많이들 기타를 손놓게 된다. 나 또한 그러한 연유로 기타를 놓았고, 내 첫번째 기타는 기타줄이 터진채로 본가의 옷장 안에서 빛을 못 본지 수년, 아마도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주인이 언제 다시 자기를 꺼내 연주해 줄 꺼라는 기약도 없이 말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 가? 첫번 째.. 파란만장했던 추노기(등장인물 소개편) 4인 4색 저마다의 개성이 강해도 너무도 강했던, 그들의 대략적인 캐릭터를 소개하고 간다. 1. BOSS(금니빨의 크리스) 이 노가다 하우스의 수장으로 탤런트 이문식 느낌의 외모에 웃을때 반짝이는 금니가 인상적이다. 이 아재들 중 유일하게 영어가 가능하여, 수주 및 기술자 포지션을 맡고 있으며, 오랜기간 혼자 살아왔던 경험의 반증인지 김치,깍두기를 수준급으로 담아냈으며, 노가다하우스의 메인쉐프를 겸했다. 본인 가족얘기를 하지 않은 것인지, 했으나 특이점이 없어 기억에 남지 않은것인지 모르겠지만, 가족관계에 관해서는 특별히 기억에 남은바가 없다. 항상 나머지 3인의 아재를 씹는것을 즐겨했으며,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은 염세주의자였다. 또 한 남과다른 아재개그 코드를 탑재하여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쏟아내고든 .. 호주 보릿고개 SSUL(2) 눈물의 수제비 그렇게 구직자로써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통장잔고는 거의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이 쉐어하우스는 세입자들끼리 쌀은 공동구매하여 공용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 말인 즉슨, 최악의 경우라도 밥 만은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말. 우리의 통장 잔고로는 반찬은 고사하고, 매끼니 라면 한 봉지조차 맘껏 사먹을 수 가 없었다. 참고참아 사온 라면이 아까워 1인 1라면을 하지못하고, 물을 많이 넣어 끓인 한강라면 1개에 밥을 잔뜩 말아서 나눠먹으며 근근히 하루를 살아, 아니 버텨가고 있었다. 그 날도 뭔가 먹을 게 없을까 주방 여기저기를 살피던 내눈에 수납장 구석에 있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밀가루!! 였다. 비록 유통기한은 한 달 정도 지나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내 머릿속.. 파란만장했던 추노기(전편) 아직 끝나지않은 보릿고개 썰의 끝을 내 주었던 첫 직장, 그것은 바로 타일 데모도(보조공) 이었다. 그렇게나 고집했던, 영어를 쓰며 일하는 업종이 아니었지만, 구인시장에서 내 영어실력으로는 당장 취업이 어렵다는 냉정한 자기성찰과 찢어지게 궁핍했던 상황이 나를 막노동 현장으로 내 몰았다. 한국에서도 막노동의 경험은 없었기에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한채로 출근을 했다. 당시 사장님은 혼자서 보조공한명을 데리고 개인주택 위주로 공사를 다니시는 분이었다. 첫인상은 '통아저씨'가 떠올랐다. 통아저씨가 떠오르는 얼굴에 깡마른 체형마저도 그냥 통아저씨였다. 막노동경험이 없다는 나에게 별것 없다며, 자기가 시키는것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모든것이 새로웠고 모든것이 서툴렀던 나에게는 흔히 말하는 '일머리.. 호주 보릿고개 SSUL.(1) 영양과잉이라, 오히려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살이찌고 비만이 될 걱정을 해야하는 시대를 살고있는 요즘엔 '보릿고개'라는 말을 쓸일도 들을일도 거의 없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역사책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단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도 찾아보니 보릿고개는 1960년대까지도 존재했었고 1970년대에들어 점차 사라져갔다고 한다. 나도 진짜 보릿고개를 겪어보진 못 했지만, 보릿고개만큼이나 궁핍했던 시절을 보낸 호주에서의 일화를 회상해 본다. 이 모든 일들의 원흉 김LEO HOBART BACKPACKERS(여행자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형이 있었다. 탁재훈을 닮은 외모에 WORKING HOLIDAY 초행자들의 긴장감은 찾아볼 수 가 없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BAR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그... 그를 .. 해외봉사활동 in 영국(2) 그렇게 도착한 영국 런던. 난생 처음 와본 런던의 정취를 눈에 담을새도 없이 바로 버스를타고 1시간가량 더 들어간 시골마을에 도착했다. 먼저 가 있던 친구들이 환영을 해주며 소개를 해 주었다. 위 사진과 비슷하게 생긴 집에,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과 봉사자들이 함께 모여사는 형식이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나라에서온 봉사자들이 있었다. 독일인봉사자들이 가장 많았는데,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어서 많이 온다고 했다. 그 밖에도 스페인, 콜롬비아, 아프리카에서 온 봉사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1년간 묵게될 방으로 안내를 받았 다. 침대와 책상이 전부인 작은방이었다. 작았지만 지내다보니 큰 불편함은 없이 지냈던거 같다. 짐을풀새도 없이 가방만 넣어놓고 다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며, 앞..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