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보릿고개 SSUL(2)
눈물의 수제비
그렇게 구직자로써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통장잔고는 거의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이 쉐어하우스는 세입자들끼리 쌀은 공동구매하여 공용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 말인 즉슨, 최악의 경우라도 밥 만은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말. 우리의 통장 잔고로는 반찬은 고사하고, 매끼니 라면 한 봉지조차 맘껏 사먹을 수 가 없었다. 참고참아 사온 라면이 아까워 1인 1라면을 하지못하고, 물을 많이 넣어 끓인 한강라면 1개에 밥을 잔뜩 말아서 나눠먹으며 근근히 하루를 살아, 아니 버텨가고 있었다.
그 날도 뭔가 먹을 게 없을까 주방 여기저기를 살피던 내눈에 수납장 구석에 있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밀가루!!
였다.
비록 유통기한은 한 달 정도 지나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메뉴는 수. 제. 비! 부가적인 재료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밀가루 반죽을 시작했다. 물을 끓이고 공용으로 쓰는 양념중 멸치다시다를 몇스푼 부어 저었다. 평소 멸치를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잘끓인 사골국보다도 더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풍겨왔다. 냉장고 야채칸 한구석에 말라 비틀어진 양파 하나, 껍질을 까고 까다 보니 먹을 수 있는 속알이 나왔다. 대충 썰어 넣고, 밀가루 반죽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뜯고 또 뜯었다 그리고 또 뜯었다. 이렇게 까지 뜯어 넣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뜯어 넣고야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냄비 뚜껑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고 국물이 냄비벽면을 넘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이제 먹어도 좋다는 OK사인. 시장이 반찬이랬던가? 부실한 재료였지만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 없이 먹기만 했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몇 번의 수제비를 먹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수제비만 보면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한켠이 지릿해지곤 한다.
Party? party! ㅠㅠ
이력서 출력과 인터넷사용을 위해 도서관에 가지 않는 시간이면 우린 항상 집에 있었다. 나가면 일단 돈이 들기 때문이었던거 같다. 그 집에 있던 영화 '거룩한 계보' 와 드라마 '환상의 커플' 나상실이 꼬마들에게 숫자세는걸 가르치는 에피소드는 정말 몇 번을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본 거 같다. 그렇게 비생산적 그리고 비소비적으로 시간을 죽여가던 우리를 보다 못 한, 집주인 성실이는 우리를 바베큐 파티에 초대했다. 자신의 학원 친구들이랑 바베큐 파티를 하기로했는데 우리도 같이가자고 했다. 바베큐???!! =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였기때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Yes를 외쳤다. 그 뒤에 찾아 올 굴욕은 생각지도 못한 채...
여담이지만, 호주는 공원에도, 호스텔에도, 살았던 집 주변 혹은 수영장 옆에도, 바베큐 시설이 잘 구비 되어있어 바베큐파티를 하기좋은 환경이다.
다시 그 날로 돌아가서, 바베큐파티하기러한 당 일, 성실이는 우리에게 참가비 5불씩 달라고 했다.(50불 아님 5불임)지금 생각 해 보면, 그 때 우리의 궁핍한 재정상태를 알았던 성실이가 나머지금액을 부담하고 최소한인 5불만 달라고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겐 5불의 여유조차도 없었다. 5불이면 라면이 몇 봉지고, 밀가루며, 식재료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기에 우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성실이는 '진짜 뭐 이런놈들이 다있지?'라는 표정으로 눈빛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저 상황에 욕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았던 성실이의 인내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성실이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세상에서 가장 불편했던 바베큐파티를 했다. 저 날 무엇을 먹었는지, 얼마나 먹었는지는 흐릿한 기억조차도 남아있지가 않다. 너무 불편하고 수치스러운 기억이라 스스로 기억하지 않기라도 한듯이 말이다. 이 후 타일보조일을 구해 그 집을 떠나게 될때까지도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 했고, 그녀에게 따뜻한 밥한끼로 고마움을 보상하지 못 한 채 그녀와 다시 만나지 못 했다. (언제 어떻게 혹여나도 연락이 닿게 된다면 정말 제대로 대접한번 하고 싶다.)
Atom과 Orange
그렇게 수제비와 라면으로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텨가던 어느 날, ATOM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렌지가 쥰나게 먹고싶다. 근데 우리 라면살돈도 없는 데 오렌지는 무리겠제?" ATOM의 입에서 나온게 '김치'가 아니라 오렌지여서 놀라고 의문가득하게 답했다.
"오렌지? 김치 말한거 아니고 오렌지 맞나?"
"응, 오렌지 맞다. 왠지 모르겠지만, 오렌지가 너무 땡기네"
"이그, 지금 우리 라면 살 돈도 없는데, 오렌지는 좀 힘들지 않겠나?"
"맞제? 그냥 해본 소리니 신경쓰지마숑"
그러고 얼마 후에 극적으로 ATOM이 먼저 취직하게 되었다. 한국식당이었다. 호주는 주급제이기 때문에 1주 혹은 2주마다 한번 씩 급여를 받을 수 있었는데, ATOM이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쯤 지난 후 였던거 같다. 여느 때 처럼 도서관에 다녀온 나는 우리 것 이라고는 물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냉장고를 열었다. 그런데 왠걸? 냉장고는 온통 주황빛이었다.
그 냉장고를 가득채운 주황빛에 눈이 부실지경 이었다. '미친 놈, 월급타서 저질렀네' 혼자 생각하고는 전화를 들었다.
약간은 업된톤의 ATOM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냉장고 봤제? 오늘저녁에 맛있는 거 좀 먹자"
"그..그래 알겠다."
나는 아직 구직전이었지만, 이제 그 길고 힘들었던 고생의 밀가루시간이 다 끝난것만 같아 울컥했다. 그 날 강렬했던 오렌지의 기억 때문인지 그 날 저녁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주일치 급여로 방값이며 식대며 해결해야 했기에 대단한 만찬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아직도 오렌지를 까먹을때면 ATOM의 얼굴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수제비와 오렌지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 원래 궁핍하기도했지만 이렇게 까지 궁핍하게 된데에는 큰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당사자의 허락을 받는다면 씨부려 보도록하겠다.
그리고 끝으로 잘버텨준 20대의 철철아! 고생했고 고맙다.